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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와 예의
  • 기사등록 2022-03-07 10:44:56
  • 기사수정 2022-03-07 10: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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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요즘은 '무도는 예(禮)로 시작하여 예로 끝난다'라는 말이 공염불처럼 느껴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도, 격투기에서 말하는 '예'는 항상 가장 강조되어야 합니다. 매너(manner)라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말이 달라서 그렇지 우리가 말하는 예의와 매너는 결국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예의(禮儀)는 그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검도회의 경우는 세 가지 대상을 향하여 예를 표합니다. 첫째는 국기에 대한 예이며 둘째는 사범에 대한 예,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로 간의 예입니다. 국가와 가르치는 이, 배우는 이들 간의 예의인 셈입니다. 또 주짓수나 레슬링은 처음에 매트에 올라가면 각각 우선 심판과 악수를 합니다. 그리고 선수끼리 악수를 하고 시작하며 경기가 종료되면 승자 선언 후 역시 악수를 하고 마칩니다. 서양 투기 종목이라 하여 예의가 없는 것은 아닌 거지요.

 

이렇듯 동양 무도, 서양 투기 종목을 막론하고 예의와 매너는 공통적 기본입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승리한 후 승리 퍼포먼스를 금지하는 종목도 제법 있습니다. 언급한 검도는 이겨도 환호하는 제스츄어를 취해서는 절대 안되는 종목이며 극진가라테의 최영의 총재도 그것을 엄격히 금지시켰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지요. 하나는 패자에 대한 예가 아니라는 점이며 또 하나는 이겨도 자만하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무도 본래의 자세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투기 종목에서 특히 예의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축구든 야구든 모든 스포츠는 매너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강조합니다만 동네 체육관에서마저 예의범절을 강조하는 무도 만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접하는 운동 자체가 사람을 때리고 메치고 꺾고 조르는 투기(鬪技)이기 때문입니다. 승패를 겨루되 정말로 사람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주고 받기 때문입니다. 피를 보며 칼부림하는 세상은 사라졌지만 검도는 형태를 바꾸어 종목으로 함께 숨쉬고 있고 콜롯세움의 글래디에이터들은 이제 없지만 격투기 선수라는 이름으로 이 시대에도 존재합니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반드시 상대의 피를 보고야 말겠다,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굴복시키겠다는 야만성이 아닙니다. 그 많은 스포츠 종목 중에서 투기 종목이 그래도 존재하고 인기를 얻는 이유는 가장 원시적이랄 수 있는 투쟁에서 얻을 수 있는 체육적, 정신적 효과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격투기, 무도, 투기 종목이라는 것은 그렇게 격렬하고 수많은 감정이 오가는 종목이며 그렇기 때문에 예의를 강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얼굴에 강타를 얻어맞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지만 수련을 통하여 그것에 침착히 반응하여 정확하게 대응하고 반격하듯이, 때로는 투쟁심과 분노가 있음에도 예의를 잊지 않도록 단련해야 하는 것은 무도를 하는 사람의 숙명입니다. 격투기란 예의가 없어지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한없이 폭력적이며 야만성을 띌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 본성이 아름답고 착하고 건설적인 것만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기 때문에 그것을 스포츠로 순화하되, 최종적으로는 인간답게 예의를 익히고 상호 표함으로써 투기 종목이 생존하고 번창할 수 있습니다.

 

예의 없는 투기는 폭력과 다름 없습니다. 물론 마음이 담긴, 진심이 담긴 예의가 가장 바람직하겠습니다만 행여 눈에 보이는 격식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일단 몸으로 습관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경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는 말을 했습니다. 무릇 종교라고 하면 마음이 더 중요시되기 때문에 '너희 마음을...' 이라고 해야 될 것 같지만 바울은 ‘몸’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는 뭘 다짐하기도 쉽고 약속하기도 쉽지만 사실 몸은 그렇지 않지요. 내일 새벽부터 운동하겠다는 마음을 먹어도 몸이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몸의 버릇이 그 사람을 결국 좌지우지하게 됩니다. 마음이 중요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몸의 순종이 오히려 중요하고 어렵다는 것을 사도가 안 것이지요. 결국 무엇이든 몸에 배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것은 예의와 매너도 마찬가지입니다.

 

승리의 기쁨이 치솟건만 그럼에도 그 기분을 누르고 패배한 상대에게 예의를 표할 줄 아는 것, 반대로 패배한 쓰라린 비참함을 억누르고 승자에게 깎듯이 예의를 표할 줄 아는 운동이 존경 받는 운동이며 그런 무도, 격투기가 오래 사랑 받는 법입니다.

 

강한 사람이 인정과 의리가 있고 매사에 겸손함과 예의범절이 몸에 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존경합니다. 반대로, 강하지만 인정머리라고는 없고 잔인하며 자기 밖에 모르면 그는 괴물로 취급받습니다. 사람 패는 기술을 배운 사람이 사람에 대한 동정심과 스스로에 대한 제어력이 없다면 그는 괴물과 다를 게 없습니다. 어떤 선수로 성장하느냐, 어떤 모습으로 대중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키느냐는 처음 시작부터 결정됩니다. 시작부터, 그리고 평소에 몸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진실된 예의범절이 그 사람의 강함과 겹쳐질 때 사람들은 그를 동경하고 존경하게 됩니다.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 어떻게 제자를 육성할 것인지는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모두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이며, 동시에 간과하기 쉬운 이 예의에 대한 요소를 늘 강조해야 할 것입니다. 예의는 눈에 보이는 허식이 아닙니다. 경기자의 예는 승패를 떠나 단련된 사람들끼리의 성숙된 자부심이며, 수련자의 예는 배우는 자신에 대한 다짐과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담겨있습니다.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하는 것은 귀찮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무도, 격투기를 하는 사람으로써의 자부심이 담긴 빈틈없음과 구별된 단정함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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