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무술에서의 근본론적 시각과 사대주의
  • 기사등록 2022-03-02 22:25:53
기사수정


근본론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종종 오래된 것이나 시초가 되는 것일수록 더욱 완전하거나 좋은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시각은 또한 고금을 막론하고 동양무술계 전반에 걸쳐 만연한 분위기인데 제국주의의 문화적 변형인 '중화주의(中華主義)'를 일말의 의심 없이 고취하는 중국무술 쪽은 특히 심하고 다소 즉물적이고 기능적인 경향이 있는 일본무술은 조금 덜하지만 거기에 '무사도(武士道)'라는 전제주의적 가치관이 끼어들면 일본무술도 중국무술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중간에 끼어있는 한국무술은 스포츠화 된 서양무술을 대할 때는 오리지널리티에 별 관심이 없다가도 동양무술이나 한국전통무술을 다룰 때는 그것의 오리지널리티에 광분하며 시원적인 것의 절대적 우위에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는 경향이 심하다. 이런 현상은 동양무술이 기능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것임을 알게 해주는 결정적 반증이기도 한데 이처럼 문화와 기능이 한데 뒤섞여 있는 동양무술을 수련하며 그 속에 숨은 선입견과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쉽사리 전제주의적 입장를 지지하거나 맹목적인 근본주의자가 되기 십상이다.

 

극동의 무술을 오래 수련한 사람 대부분은 비전, 비급, 적통, 직계, 계보 등등에 목을 메고 사부를 이길 자가 후대에 없으며 창시자를 능가하는 제자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게 마치 바람직한 덕목이나 정합적인 논리인 양 취급된다.  팔극권의 이서문을 이길 자는 없고, 태극권의 양로선, 팔괘장의 동해천을 뛰어넘는 현대의 수련자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고 창시자들이 만들어 놓은 형태와 내용을 절대 바꿔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일본무술도 중국무술과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중국무술이 유파의 창시자나 유파에서 이름을 떨친 고수 등등 인적인 요소를 우상화해 자신이 수련하는 무술의 절대성과 우월성을 주장하는 매개로 삼는다면 일본무술은 계보 혹은 기술이나 기법의 이름, 내용 등을 전서나 목록으로 만들어 서로 주고받으며 자긍심과 권위의 배경으로 삼는다. 

 

인적 요소가 되었든 물적 요소가 되었든 시원적인 것의 가치를 ‘절대화’하는 것이 근본론의 주요 내용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러한 행태를 보이게 되면 그것은 곧 문화적 제국주의와 전도주의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제국 혹은 세력 주변에 서성대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 권위나 권력에 빌붙고 나팔을 부는 것이 곧 사대(事大)이다. 

 

하지만 제국주의든 중화주의든 그것은 이미 기득권화 된 세력의 정체(正體)를 유지하려는 도그마에 불과하며 설혹 그 속에 일말의 진실이 있다 하더라도 맥락과 대체를 살피자면 결코 인류가 본받아야 할 보편적 가치나 지향은 없다. 나아가 세력의 주체도 아니면서 그에 빌붙는 자들의 사대야 말해서 무엇할까!

 

반면 한국무술은 로컬에서 창시되거나 혹은 해외에서 유입되고를 막론하고 성공하기만 하면 즉시 교조화되고, 만약 잘 안 될라치면 근본도 없는 조각들을 잡탕으로 버무려 역사성이나 사회성은 애시당초 무시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이는 우리 한국인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대한민국 근대역사의 연속과 불연속이 가져온 폐단이 주요 원인이다. 

 

일제가 강점한 기간 동안 모든 사회적 성취는 배반과 위선, 거짓과 기만에 눈감아야 하는 이율배반의 관용과 방임 속에 이루어졌다. 해방 후에도 이러한 적폐를 일소하지 못하고 아무리 반칙과 불공정이 횡횡하더라도 빠른 성장과 무조건적 성공만 이루면 ‘장땡’인 왜곡된 풍조가 마치 자본주의 내 당연함처럼 유행했었다.

 

이런 유행 속에 한국 무술계는 무협지에도 쓰이지 않을 정도의 환타지가 사실로 주장되거나 받아들여졌었고 공공연히 역사와 사실을 왜곡해도 아무런 지적조차 할 수 없던 시대가 분명 있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전 세계에서 GDP 10위의 선진 국가이며 블룸버그 혁신지수 1위 국가이고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는 환상과 거짓이 설 자리가 드물다. 때문에 눈에 띄게 드러나는 거짓과 왜곡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아쉽게도 무술계의 기득권은 여전히 근본론적 태도를 통해 교조화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브라질리언주짓수’는 근래 한국에 유입된 무술 가운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최단기간에 널리 보급된 무술이다.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의 성인들이 수련하고 있으며 국내에도 현재 천여 곳이 넘는 도장이 운영되고 있다. 브라질리언주짓수는 ‘NEWAZA 혹은 JIU-JITSU ’라는 이름으로 2015년 아시안게임 세부종목이 되었고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는 국내의 ‘성기라’, ‘황명세’ 2인이 출전해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브라질리언주짓수의 아시안게임 세부종목 편입은 100여 년에 달하는 브라질리언주짓수 역사에서 획기적인 일인데 이는 의외로 브라질이 아니라 아랍에미리트(UAE)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졌다. 왜 획기적이냐 하면 브라질리안주짓수가 아시안게임 종목이 됨으로써 종목 명칭에서 ‘브라질’이라는 국가명을 삭제하고 스포츠라는 형식을 통해 ‘주짓수’라는 종목 명칭을 인류의 보편적 자산으로 승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태권도가 그냥 태권도로 된 것과 같고 영국야구가 그냥 야구가 되고 미국농구가 그냥 농구로 된 것과 같다. 종주국이라는 역사적 기원은 존중하되 더이상 기원의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무술의 전통적 가치체계인 ‘무도’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스포츠’가 어떻게 다르고 둘 중 무엇이 우월한가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전통적 시대의 무술계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근본주의적 시각이 현대 스포츠에서는 옅어지거나 보이지 않는 것 만은 분명하다. 이런 면에서 주짓수의 스포츠화는 분명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근본주의적 시각은 필연적으로 사대(事大)를 강요하거나 사대를 필요로 한다. 특히 기득권이 권위의 배경을 맹목적으로 주장할 땐 그것이 과연 사대가 아닌지, 상식과 보편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맹신은 맹신을 낳고 거짓은 거짓을 낳는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계할 일이다.

관련기사
TAG
1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2-03-02 22:25:53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최신뉴스더보기
스포츠 거버넌스_02
마가린1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