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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武藝)와 영감(靈感)
  • 기사등록 2022-02-23 11:25:07
  • 기사수정 2022-02-23 11: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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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천재는 한 번의 압도적인 영감으로 인해 명성을 얻지만 그러한 영감을 반복 재현할 수 없게 되면 창조적 영감은 그만 멈추어버리고 그는 혼자만의 천재성 속에서 외로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다. 반면, 나이 든 대가는 젊었을 적의 압도적인 영감을 반복 재현하기 위해 수많은 모색과 뼈아픈 단련을 거치고서는 드디어 자신에게 현시된 창조적 영감의 전모를 파악하게 될 뿐 아니라 그러한 영감의 재현을 방해하거나 왜곡하는 인식적 오류와 습관들 또한 파악하게 된다. 그렇게 됨으로써 대가는 젊은 천재와는 달리 후학들에게 자신이 얻었던 영감과 그 영감을 둘러싼 숨겨진 사실들에 대해서도 공유하거나 가르칠 수 있게 된다.

 

그렇다! 기예나 예술에 있어서의 배움이란 불현듯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창조적인 영감을 재현하려는 가운데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모색과 단련의 술래잡기다. 그리고 결국에 얻게 되거나 깨닫게 되는 것은 틀린 것, 아닌 것, 유사하지만 아닌 것 등 되는 것에 관한 게 아니라 안 되는 것에 대한 전반적이고 폭넓은 이해와 경험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렸을 때 모두 다 예술적 천재였다. 놀이, 상상하기, 읽거나 그리기, 배우기, 사물이나 자연과의 친화력, 드라마나 영화에 몰입하며 느낀 감동들, 부모나 친구와의 일체감, 노래하고 춤추기, 한 마리 짐승처럼 뛰어놀기, 심지어는 죽은 듯이 자고, 완전히 이완하면서 휴식하기 등 물아일체의 완전한 영감들 속에서 지냈던 어린 날들의 기억들을 전부 부정할 필요는 없다.

 

무예 속에서 나는 그러한 것들을 다시 찾는다. 드물게 찾아오는 단련과 스파링 도중의 강렬한 심신일치의 통합감, 마치 강물 위에서 흐름 따라 떠다니는 나뭇잎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몸짓들, 자신이 전력으로 행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가 마치 남의 것 인양 혹은 자연스런 것 인양 관조되는 묘한 감각들, 그러한 감각과 동시에 나타나거나 떠오르는 삶에 대한 예술적인 영감과 철학적인 의미들을 반복해서 재현하고 맛보기 위해 나는 지속적으로 무예 안에서 모색하고 방황한다.

 

고사에, 가전의 동상 치료약으로 시장에서 생업을 삼던 사람에게 그 처방을 사서 혹한기의 국가 간 전쟁에 사용해 대승을 거둔 관리 이야기가 나온다. 예술이나 기예를 닦는 사람들이 그것을 단지 예술이나 기예로만 놓아두고 스스로의 전반적인 삶과 유리시키는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다.

 

사실 도장에서 수련하는 일도 꽃꽃이 학원이나 댄스 학원에 다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스스로가 그것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느냐, 혹은 거기서 어떤 상징을 발견하고 어떤 영감을 얻느냐에 따라, 그것이 하나의 기예로 머무느냐 혹은 전반적인 삶의 깨달음이나 스타일이 되느냐 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나는 수 년 동안 매일 조금씩이나마 짬을 내어 명상을 했지만 별로 깨우침이 없다가 오히려 본격적인 무예 수행을 하면서 영감이란 스스로가 발견하는 상징과 부여하는 의미란 것을 알게 되었다. 진정한 예배자는 교회가 없다 해서 예배하지 못할 리 없고, 진정한 참선자는 법당이 없다 해서 참선하지 못하란 법이 없다. 마찬가지로, 삶의 의미를 진정으로 곱씹어 보려는 진중하고 진솔한 사람들은 어떤 장소, 어떤 일이든지 막론하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궁구하고 모색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삶의 현장이 모두 교회이자 법당이며 삶의 모습 그대로가 예배이고 참선이다.

 

내가 도장 관장이니까 장사 속에 무예를 두둔하는지 모른다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데, 무예나 꽃꽃이나 댄스나 수영이나 모두 동일하다. 아니 취미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종사하는 모든 종류의 생업이 전부 동일한 가치이다. 뭐가 더 우월한 경우는 없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그것에 어떤 의미를 두고, 어떤 상징들을 발견하고, 어떤 영감을 얻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태도 없이 자신이 소일하는 취미나 직업 속에서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깊이 들어가는 사람을 보지 못했으며,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고, 나날이 연구하고 연마하면서, 그러한 공부가 천성처럼 훈습되어, 삶의 전반적인 곳에 다시 적용되는 전인적인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도장에 나오는 친구들에게 관장 본인이 의미 있다고 주장하는 곳이 아니라, 도장과 수련을 자신들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장소와 행위로 만들라고 조언하곤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부여한 심대한 의미 속에서 그들에게 무수히 창조적인 영감들이 현시되길 기원하며 그러한 영감들 속에서 다시금 그들의 삶의 의미들이 새롭게 조망되길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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